르망 가는 길 : 다시 만난 르망

Q) 왜 프랑스로 유학을 왔나요?

: 저의 경우는 이번이 프랑스에서의 두 번째 체류에요. 첫 번째는 어학 연수를 목적으로 한 체류였죠. 사실, 그 때의 경험이 저의 두 번째 프랑스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 프랑스, 르망(Le Mans)에 도착했을 땐 그저 ‘학점 신경 안 쓰고 놀다 가야지.’ 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당연한 소리겠지만, 처음 맞닥뜨렸던 풍경이 이국적이라 정말로 예뻤어요. 특히나 구름이 그렇게 낮게 떠있는 모양은 처음이라 신기했어요.

Nantes river

한국에서는 아파트들이 산재해서인지 항상 구름이 높게 떠있잖아요. 그래서 하늘이랑 구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이 프랑스에서는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물론 당시에 같이 있던 다른 친구들은 그런 풍경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저 혼자만 호들갑을 떨었죠. 저는 특정 대상의 보편적 이미지가 깨지면서 생기는 틈새를 좋아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다 습작을 쓰는 데 재료가 되거든요. 그래서 어학 연수 이후, 문예 창작 수업 시간에 제가 겪은 프랑스를 묘사할 때면 꼭 구름이 낮게 떠있다는 문장을 넣곤 했어요.

Q) 그럼 소설을 쓰기 위한 재료로써 여러 풍경을 보기 위해 두 번째 유학을 결심한 건가요?

: 물론, 아니에요. 풍경도 좋았지만, 두 학기를 그 곳에서 보내면서 르망에 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곳에서 저를 친딸처럼 대해주는 프랑스 가족도 만났고, 저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들도 만났거든요. 그들이랑 좀 더 매끄럽게 대화하려고 밤마다 기숙사 방 침대에서 9-12세용 프랑스 소설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공부했는데, 4번째 책을 끝내고 나니 어느새 어학 연수가 끝났더라고요.

두 학기를 보낸 기숙사방을 깨끗이 비워줄 땐 그냥 좀 마음이 싱숭생숭한 정도였어요. 실감이 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공항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제가 살았던 기숙사 건물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니 멈출 수가 없었어요. 원래는 웃으면서 ‘저기에 내가 살았었어요’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정말로 머물렀던 곳이 집과 같은 장소가 되어버린 지라 울음을 그칠 수 없었어요. 비자 만료일 때문에 떠나야 하는 상황이 서럽더라고요. 꼭 정든 집에서 내쫓기는 기분이었어요.

샤를 드골 공항에서는 서러움이 더 가중됐죠. 겨우 유리문짝일 뿐인데, 저 곳을 지나면 프랑스 가족이랑도 친구들이랑도 볼 수 없으니까요. 그 때는 창피함도 잊고 엉엉 울면서 비행기를 타러 갔었어요. 그러면서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Q) 프랑스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불문학을 선택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동기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요?

: 아직도 미숙한 습작만 쓰고 있어서 이런 말을 꺼내기 민망한데, 저는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그래서 그 꿈과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합쳐진 결과가 불문학 석사 전공이었어요. 좀 더 문학을 공부하면 제가 쓰고 싶은 주제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 거고,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또한 넓어질 거라고 확신하든요.

Q) 두 번째 유학을 준비할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 언어 실력이 어학 연수 전으로 퇴화해 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매일 달고 살았어요. 프랑스에 있을 때 좀 더 일찍 프랑스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그 곳에서 쭉 학업을 이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대학 원서 넣는 시기를 지나 보내고 나서야 프랑스에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거든요.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돌아와야 했었죠.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원 진학 준비를 했는데, 그때가 참 힘들었어요. 원서 접수는 3월에 끝났는데, 입학 허가서는 6월 중순에서야 도착했거든요. 합격 여부도 알지 못한 채 언어를 안 잊으려고 공부하면서도 이유 없이 좌절감이 드는 날이 많았었어요.

Q) 대학원 진학을 위해 르망이 아니라 다른 도시를 선택했는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르망 대학원(Université du Maine)에도 원서를 냈었지만, 7-8월은 비자 신청이 몰리는 달이어서 혹시라도 미리 잡아 놓은 출국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스러워서 타 대학원 결과를 기다릴 수 없었어요. 다행스럽게도 낭뜨 대학(Université de Nantes)에 합격해서 그나마 르망이랑 가까운 곳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두 도시 다 ‘루아르(Pays de la Loire)’ 지역에 속해있거든요. 물론 르망이 그립지만, 새로운 도시인 낭뜨(Nantes)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 때, 때마침 ‘미지 세계 문화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의 공고가 떴고, 전에 살던 곳과의 연결 고리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저한테는 좋은 기회였죠. 저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살았던 도시를 소개하기로 결심했어요. 파리처럼 관광도시가 아니어서 루브르, 튈르리 정원, 몽마르뜨르 같은 유명한 곳은 없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된 동네도 있고, 12월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있고, 여름엔 ‘르망 24시’라는 레이싱 대회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거든요. 지방에도 예쁜 장소, 유적이 많은 데 다들 파리라는 단면으로 프랑스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어서 안타까웠던 찰나에 저한테 이런 기회가 와서 얼마나 기쁜 지 몰라요. 모두가 그러겠지만, 제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조금은 팔불출스럽달까요.

Q) 정착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 처음 낭뜨에 도착했을 때, 집 문제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인터넷 공고로 집을 구했었는데 분명 거기엔 집주인이 학교에서 22분 거리라고 적어놨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기차로 22분 거리였던 거에요. 그것 때문에 집주인이랑 실랑이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잘 해결돼서 이번엔 정말로 학교랑 15분 거리에 위치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Q) 상상했던 프랑스 대학원 생활과 실제의 괴리감이 컸나요?

: 한국에서는 그저 빨리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터라, 일단 오기만 하면 뭐든 다 술술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초반에 주거 문제도 겪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수업은 더 고되더라고요. 한국에 있는 동안 거의 프랑스어를 쓰질 못했으니까, 말도 어학 연수 때처럼 잘나오지 않고, 잘 들리지도 않았어요. 더군다나 수업 때 읽는 책들이 전부 고전들이라 문체가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마치 중세 국어로 된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프랑스어로 얘기하다가 라틴어를 쓰실 때는 머리 속이 하얘졌죠.

Q) 정착에 도움을 준 이들이 있다면?

: 저는 다행스럽게도 해외에서도 인복이 있는 경우였어요. 정말 산더미 같은 문제를 혼자서 다 감당해야 했다면 지금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가 왔을 지도 몰랐을 거에요. 르망에서 만났던 프랑스 가족은 제가 새 집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휴가까지 내고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와주었어요. 게다가 이곳에서 사귄 같은 과 친구들도 제가 수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주택 보조 비용 같은 행정 처리도 도와주었거든요. 한 번은 새벽에 바닥에서 구를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와서 약도 사다 주고, 거의 일주일 간은 제가 다시 아프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었어요.   시작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도시였는데,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심적인 여유를 찾고 나니 제가 새로 구한 집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집 앞에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지금껏 눈길도 안갔었거든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뒤늦게 깨달았지만 낭뜨도 참 예쁜 도시에요.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가 이전에 살았던 도시를 먼저 소개하고 싶어요. 제가 르망에 많은 애착을 가진 만큼 상투성을 털어낸 소개를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거든요. 잘 안알려진 도시지만, 제가 가진 애착을 믿고 ‘르망’에 대해 궁금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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