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 관한 겉으로만 그럴싸한 숙고 -낭트에서
친애하는 미지 세계문화 스케치북 독자분들께.
잘 지내셨나요 ?
얼마 전에 포스팅을 올려놓고 새삼 안부를 물으니 저 역시 조금은 민망합니다. 그래도 편지의 서두에는 꼭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구문이었지만, 마음을 담아 안부를 묻습니다.
현지 문화 포스팅을 보려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문체가 서한체여서 의아했나요. 혹여라도 뒤로 가기를 누르려고 한다면 잠시 멈추고 편지를 계속해서 읽어주세요.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편지’이기에 부러 문체를 서한체로 잡고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을 떠올리면 저도 역시 편지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담임 선생님께 엽서를 보낸 것과 어버이날 쓰는 편지를 제외하고는 잘 쓰지 않았죠. 어느 순간, 집에 컴퓨터가 생기고,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종이에 글을 끄적이는 일과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는데, 중학생때부터 핸드폰을 갖게 되면서 이메일도 한동안 잘 안쓰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은 어땠는지요. 편지가 아직 친근한 분들이 있는가요. 응답하라 시리즈가 주는 아련한 감성을 편지에서 발견할 때가 이따금 있나요. 하지만 자주 쓸 기회는 없을 거라 여겨집니다. 전화나 문자 메세지로 그 때 그 때 모든 얘기를 털어놓고 나면 편지에 쓸 말이 이미 다 사라진 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프랑스는 아직도 편지를 많이 이용하고 있어서 꽤나 놀랐습니다. 물론 안부 편지는 한국에서처럼 잘 쓰지 않지만, 다른 용도로 많이 쓰더군요. 핸드폰 해지를 편지로 하는 나라는 처음 봤습니다. 집 계약 해지를 할 때마저도 편지를 써야하더군요. 독자분들이 믿지 아니할까 염려되어 제가 모바일 통신사 인터넷 해지 요청 편지 견본을 가져왔습니다. 프랑스어로 되어있지만, 제가 번역을 했으니 언어는 걱정하지 마시길.
한국에서는 대리점에 가서 요청만 하면 바로 해결되는 것을 여기는 왜 번거로이 편지로 하는 지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지만, 아마 이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듯합니다. 저는 최근 아주 흥미로운 책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책은 흥미로웠지만 아주 흥미로웠다는 것은 엄청난 과장이지요. 수업 때 발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 책을 읽어야 했던 저의 심정은 독자분들이 알아서 잘 짐작하리라 믿습니다.
해당 책은 폴 자콥의 Le Parfait Secrétaire ou la manière d’écrire et de répondre à toute sorte de Lettres, par préceptes et par exemples (완벽한 비서 혹은 모든 종류의 편지 쓰는 방법과 답장을 하는 방법 : 17세기 프랑스어는 제가 현대 프랑스어로 바꾸어 썼으며 한글 제목에 오역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이라는 17세기의 편지 교본이었습니다. 그는 축하의 편지, 안부 편지, 책망하는 편지 등 여러 종류의 편지를 어떻게 써야하는 지 설명을 하고, 예시를 넣어놨더군요.
17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로부터 전해온 편지 교본에 대한 유행이 일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많은 편지 교본이 쓰여졌고, 17세기에 출간된 교본을 바탕으로 18세기에는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교본들이 탄생했죠. 시간 관계상 모든 교본을 읽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미 17세기 본 Le Parfait Secrétaire를 읽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고대 (한)국어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제가 왜 옛날 프랑스어를 읽어야 하는지 여러 차례 자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편지 교본들은 귀족들로 하여금 멋드러진 편지를 쓰드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18세기 프랑스 사교계에서 편지란 귀족들의 중요한 대화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글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문학적인 재치와 뛰어난 문장력을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글로 연애를 배우면 참 어색한 것처럼 편지를 교본으로 배우는 것 역시 어색할 수 밖에 없나봅니다. 서한체 소설에 전문가이신 한 교수님께서는 예시로 제시한 편지를 베껴서 쓰는 바람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는 경우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하셨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지가 이미 너무 길어졌습니다만, 독자분들이 지루하지 않다면 책의 내용과 제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예시 편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소개했던 교본의 작가는 편지를 두고 쓰는 이의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대변인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편지의 가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편지를 두고 삶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수단으로 표현한 것으로보아 편지를 향한 작가의 애정은 아예 찬양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가 제시한 편지를 쓰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실 폴 자콥의 Le Parfait Secrétaire의 구성은 조금 독특했습니다. 일상적인 편지 쓰는 방식부터 법적인 요구를 위한 편지를 쓰는 방식까지 각 챕터를 나누어 설명해놓은 것까진 좋았는데, 앞서 제가 말한 ‘편지를 쓰는 일반적인 방법’엔 챕터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첫번째 챕터 앞에다 덩그라니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책 구성 자체에 대한 불평을 하자면 사실 더 있지만, 작가에 의하면 편지는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므로 자제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편지의 목적에도 맞지 않기에 그 편이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작가가 제시한 방식대로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금은 어색하리라 짐작됩니다.
편지를 끝내기에 앞서 저는 독자분들에게 제가 읽었던 예시 편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편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작가가 제시한 유려한 표현력과 편지가 받는 이에게 주고 있는 기쁨을 함께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아래의 예시 편지는 애도의 편지입니다. 편지가 너무 긴 관계로 특징적인 부분만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는 미리 여기에 하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독자분들의 성실한 현지 리포터입니다.
P.S :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하느라, 편지 교본에 대한 설명이 매우 짧았습니다. 혹시라도 질문이 있으면 댓글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마드모아젤,
만약 제가 지금까지 당신이 느낀 슬픔을 통해 받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이는 시간이 그대의 상처를 먼저 치유하길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만약 제가 당신의 오라버니의 영면으로 인해 깊은 슬픔에 빠졌다는 것을 당신께 알리길 원했다면, 저는 그의 애석한 죽음이 가져온 불행을 마음 깊이 스스로에게 가하고 싶었다는 점을 밝혔을 겁니다. […] 하지만 저는 당신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당신과 함께 우리의 공통된 슬픔을 나누어야 함을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고통을 견딜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것은 어떻게 견뎌야할 지 알 길이 없습니다. […] 제 영혼의 자유는 당신의 두 손에 달려있으며 당신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신에 대한 의무를 일찍이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혹여나 그대의 아픔을 더 연장시켜 제가 한숨짓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 당신이 진정으로 위로받기 전까지는 제게 위로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 그대와 함께하는 은총은 모든 이들의 감탄을 이끌어냅니다. 그대에게서 꽃피운 영혼과 육신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하지만 마드모아젤, […] 그대는 당신의 오라버니가 죽었다고 여기며, 상념에 잠길 수는 없습니다. 그의 철학에 관한 숙고는 위대한 이들에게 알려져 있으며 이를 통하여 개개인의 기억 속에 그는 삶을 이어갈겁니다. 특히나 그의 저서를 통해 그의 자유로움과 그의 영혼을 느꼈던 제 기억 속에서 말이죠. […] 그의 죽음이 견딜만한 무게로 치부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의 뜻에 의한 그의 영원한 안식을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어찌 되었든, 산 자의 눈물은 사자의 안식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러니 슬픔에 꺾이지 마십시오. 이는 죽은 이들에게 무익하고, 남겨진 이들에겐 위험할 뿐입니다. 지나친 상념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그대의 성품과 미모마저도 알게 모르게 해칠 것입니다. […]그대는 한 사람만을 위해 울지만, 그대로 인하여 눈물을 떨구는 이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아주시길. […] 저의 슬픔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입술을, 눈을, 편지를 그대의 고통을 함께하기위해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