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크리스마스, 바이낙튼 Weihnachten
약 70%의 국민이 기독교를 믿는 독일은 사실 그렇게 종교적인 나라는 아니다. 여기서 사람들에게 종교를 물어보면 스스로 가톨릭, 개신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독실히 매주 교회에 가는 사람은 그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러나 독일의 달력과 공휴일들을 보면 –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 상당히 종교적인데, 독일의 제일 큰 “명절”이 성탄절과 부활절인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실 단어마다 번역 가능한 사전적 의미 외에 그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이 존재한다고 믿는 나는 리포트를 쓸 때마다 되도록 현지 언어를 그대로 쓰고 풀이하는 형식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명절이란 단어의 어감이나 우리가 명절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의 느낌이 Holidays(Eng.), Ferien(Ger.)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원어를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리포트를 위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조사를 하면서 여기서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알고 있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설날과 추석처럼 고향을 찾아가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느낌이 근본적으로 비슷했다. 그래서 명절이란 단어를 굳이 현지어로 수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독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하나의 민족적 명절로써도 그 의미가 크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도 모든 크리스마스는 똑같다라는 편견을 깨고 독일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더욱 자세히 배우게 되었다. 독일의 크고 작은 거의 모든 마을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시장과 – 독일어론 바이낙츠막트 Weihnachtsmarkt 라고 한다. – 최근 <비정상회담>에서 다니엘이 언급해 화제가 됐던 독일의 크리스마스 전통요리인 사슴고기(?) Hirschfleisch 를 비롯한 독일의 명절,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12월 25일 하루를 지칭할 때가 더 많지만 독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거의 12월 한달 내내라고 봐도 무방하다. 크리스마스를 독일어로는 바이낙튼 Weihnachten 이라 하는데, 이 단어의 뜻만 살펴봐도 크리스마스가 단지 하룻밤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신성한 밤 hallowed nights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단어에는 밤(夜)을 뜻하는 Nacht가 복수형인 Nachten으로 쓰여있다. 이것은 바이낙튼이 25일 단 하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많은 가정들은 크리스마스 전의 4번째 일요일부터 아기예수의 도착을 기념하는 Advent를 축하하면서 바이낙튼을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의 시작과도 같은 이 시기에 전통적으로 각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 촛불을 키기 시작한다. 총 4개의 촛불을 Advent부터 한 주에 하나씩 키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대개 Advent Calendar라 불리는 초콜릿을 선물 받는다. 12월 1일부터 24일까지의 24개의 문이 달력 디자인으로 달려있는 이 초콜릿을 아이들은 매일 하나씩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전에 또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바로 성 니콜라스를 기리는 날인 12월 6일 니콜라우스탁 Nikolaustag 이다. 그 전날 밤인 5일 저녁에 아이들은 니콜라우스슈티펠 Nikolausstiefel 이라 불리는 부츠나 신발을 현관문 앞에 걸어둔다. 그러면 그날 밤에 우리에겐 산타클로스로 알려진 니콜라우스가 모든 집을 찾아가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과 사탕을,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자작나무 지팡이를 남겨둔다고 한다.
위에서 살짝 말했다시피 독일의 바이낙튼에서 뺄 수 없는 중요 행사가 바로 바이낙츠막트 Weihnachtsmarkt 이다. 이번 겨울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도 ‘유럽 크리스마스 마켓’ 이란 이름으로 설치되었던 바이낙츠막트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크리스마스 문화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워낙 오래된 문화이자 유럽의 전통 그 자체인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조를 논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름 독일 리포터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자부심으로는 이 시장이 독일의 문화에서 출발했다고 말하고 싶다. – 아래의 내용은 증명되지는 않은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쓰여졌음을 밝힌다. –
지금처럼 집 근처에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대형슈퍼마켓이 없던 시절, 추운 날씨 탓에 겨울에는 마을에 시장이 잘 서지 않았다. 빵과 고기, 술을 비롯한 생필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사람들은 축제형식으로 마을마다 시장을 세우기로 하였고 그 곳에서 따뜻한 와인인 글뤼바인 Glühwein 과 다양한 종류의 독일식 소시지 부어스트 Wurst, 독일식 진저브레드인 렙쿠헨 Lebkuchen, 과일케이크 슈톨렌 Stollen, 마찌판 Marzipan 과 같은 전통음식들을 먹으며 생필품들을 거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 시장은 12월 바이낙튼 때마다 열리며 크리스마스의 전통이 되었고 독일과 인접해 있는 여러 나라에게도 영향을 끼쳐 오늘날의 유러피안 크리스마스 마켓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조에 대한 논쟁은 잠시 뒤로 하더라도, 모두가 동의할만한 사실은 독일의 바이낙츠막트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든 도시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는 바이낙츠막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뉘른베르크의 바이낙츠막트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고 더욱 아름답다. 보통 12월 초부터 크리스마스 이틀 전까지 여는 바이낙츠막트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럽을 방문할 계획인 사람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크리스마스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크리스마스 트리, 물론 독일에도 있다. 바이낙츠바움 Weihnachtsbaum 이라고 불리는 독일식 크리스마스 트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트리와 큰 차이는 없다. 물론 바이낙츠바움은 살 수도 있지만 여전히 몇몇 사람들은 직접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해오기도 한다. 바이낙츠바움은 24일 오후부터 다음해 1월 둘째 주까지 세워두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독일에서도 하일리히아벤트 Heiligabend 라 불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는 무언가 설레는 날이다. 크리스마스 전날이라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아마 저녁식사 전 혹은 후에 하는 베셔룽 Bescherung 이라는 “선물 교환 타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날은 꽤 조용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데, 24일과 25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 법정공휴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인 또는 친구들과 시내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독일에선 이브 날 가족끼리 교회 또는 성당에 다녀오고 – 앞에서 보통 기독교를 믿는다 해도 평소에 교회에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지만, 하일리히아벤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간다. – 간단한 저녁식사와 베셔룽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진짜 크리스마스 저녁은 25일 당일에 가족끼리 집에서 크게 요리해서 먹는데, 보통 감자 샐러드를 곁들인 생선이나 오리, 거위요리를 먹는다. <비정상회담>에서 다니엘이 말한 사슴고기요리는 지인들에게도 물어보고 인터넷으로도 조사해보았으나 믿을만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다. 독일인 친구들도 대부분 크리스마스 요리로써의 사슴고기 Hirschfleisch 는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으나 부족한 나의 자료조사 탓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알아본 후에 다음 기회에 다시 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독일에서 벌써 두 번째 바이낙튼을 맞았다. 솔직히 혼자 사는 유학생인 나에게 바이낙튼이란 쉬는 날에 불과했다. 모든 식당, 가게도 문을 닫으니 사실 조금은 외롭고 심심한 날이기도 했다. 항상 친구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크리스마스와는 다르게 가족끼리 보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커서 괜히 가족들이 더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설날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기분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딱히 바이낙튼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종종 독일 친구들이 집에 초대해주어도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을 내가 방해하게 될 것 같아 거절만 했었다. 그러다 이번 기회 덕분에 잘 모르고 있었던 바이낙튼에 대해 드디어 자세히 배우게 된 것 같다. 또 올해 바이낙튼은 리포트 조사를 핑계로 바이낙츠막트에도 더 자주 가고 바이낙튼 음식들도 먹어보며 더욱 바이낙튼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보통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은 바이낙튼부터 질베스타까지를 일컫는데, 마지막으로 이 시즌에 꼭 알아두어야 하는, 독일어권 나라에서 굉장히 유용할 문장을 하나 알려주고자 한다. – 바이낙튼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중요한 명절인 질베스타 Silvester 는 교황 실베스테르 1세를 기리기 위한 축제일이다. 이 교황이 사망한 335년 12월 31일 이후 매년 12월 31일을 질베스타라고 부르는데, 오늘날에는 기념일로써의 종교적 의미는 많이 바래지고 새해를 대체하는 말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쓰이고 있다. – “프로헤 바이낙튼 운트 글륙클리쉐스 노이에스 야르! Frohe Weihnachten und glückliches neues Jahr!“